안동의 고가 : 고산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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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상북도 안동시 남후면 광음리 34
  •  010-4806-0030
동재 앙지재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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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소개

고산서원(高山書院)은 경상북도 기념물 제 56호로 지정된 사액 서원이다. 목은 이색의 15대손 대산 이상정(大山 李象靖)이 1768년(영조14)에 고산정사를 창건하였다. 이상정은 학문과 후진양성에 몰입하였으며, 사후 이상정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이 지방의 사림(士林)이 1789년(정조13)에 서원을 건립하여 위패를 모셨다. 그러나 1868년(고종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고 그 이후에는 향사만 지내오고 있다.



- 건축 이야기

1767년 이상정이 정면 3칸, 측면 2칸의 정사를 지었다.

1769년 정사를 언덕 중턱으로 옮기고, 정사의 가운데 1칸을 마루로 꾸며 정춘헌이라 하고 실은 남쪽을 의암, 북쪽을 낙재라 하였다.

1789년 강당 건립.

1827년 강당 옮김. 옛 강당이 한쪽으로 치우쳐 있어 다시 땅을 마련하여 북서쪽으로 옮겼다. 왼쪽에 방을 만들고 나머지는 모두 마루로 꾸몄다. 마루는 호인당(好仁堂)이다.

1828년 5월에 강당 앞 왼편에 앙지재, 정허루를 지었다.

1844년 재실 맞은편에 장판각을 짓고 문집과 책의 판목을 갈무리하고 문하 여러 제자의 판본도 아울러 여기에 수장하였다.

1857년 경행사를 짓고, 같은해 9월에 위판을 봉안하였다.

1977년 고산정사와 백승각을 보수하였다.

1984년, 1985년 강당인 호인당, 묘우인 경행사, 동재를 중수하였다

1985년 유림의 공의로 소산 이광정 선생을 배향하였다.



- 건축배경

1767년 이상정(李象靖, 1711~1781)이 지은 고산정사 자리에 지역 사림들이 대산을 기리어 1857년 경행사를 지었다.



- 건축특징

사당인 경행사(景行祠)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풍판이 설치되어 있다. 공포는 이익공 양식을 사용하였으며 겹처마로 단청이 되어 있다.

사당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동, 서쪽에 3단으로 설치되어 있으며 사당 뜰에는 정요대가 설치되어 있다. 이 정요대는 일명 불받침대라고도 하며 서원에 행사가 있을 때 관솔불을 지펴 그 위에 올려놓아 주위를 밝힐 때 사용하였다.

서원 강당인 호인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10칸 집으로 구성되었다. 동쪽에 명성재라고 쓰인 현판이 걸려 있는 2칸짜리 방이 하나 있고, 나머지 8칸은 넓은 마루를 놓아 전면의 풍광을 즐길 수 있게 시원하게 만들었다.

호인당(好仁堂)은 우측 퇴칸에 2칸 온돌방을 두고, 전면 좌우에 자리하고 있는 백승각(百承閣)과 청임헌(淸臨軒)은 전퇴칸을 둔 정면 6칸, 측면 1칸 반의 규모로 향교의 동,서재와 같은 기능을 수행하는 건물이다. 특히 동재와 서재의 앞쪽에는 개방된 마루를 두어 주변 경관을 음미하도록 꾸며져 있다.

현재 서고로 사용하고 있는 백승각은 팔작지붕이나, 청임헌은 ‘工’자 지붕으로 모양을 달리하고 있다. 동재는 향사 때 제관들의 숙소로 사용되고 서재인 백승각에는 서원의 유물을 보관하고 있었다. 현재 유물들은 국학진흥원에 소장하고 있다.

향도문은 향사 때만 개문하여 집사들의 출입문으로 사용되고 있다. 전사청은 향사 때 제수를 마련하여 두는 곳이다.

청임헌 뒤쪽에 자리하고 있는 관리사는 안동지방의 반가형식(班家形式)인 ‘口’자형 평면이나 관리사의 기능에 적합하게 부엌, 고방 등 수장 공간을 많이 확보하였다.



- 건축구정

사당인 경행사(景行祠)와 강당인 호인당(好仁堂)이 전학후묘의 법식에 따라 배치되고 우측으로 口자형 관리사가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전면 좌측에 고산정사(高山精舍)가 있다.